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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자동차의 역사 (라 망셀, 스탠리, 도블)

by moneyfisher 님의 블로그 2026. 1. 23.

증기자동차의 역사

 

18세기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원이었던 증기기관은 공장과 선박을 넘어 자동차 산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770년 니콜라-조셉 퀴뇨가 만든 인류 최초의 자동차부터 1930년대까지, 증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먼저 대중화되며 초기 자동차 역사의 주역을 담당했습니다. 소음이 적고 성능이 우수했던 증기자동차는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요? 그리고 그 기술적 유산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을까요?

 

라 망셀과 초기 증기자동차의 혁신

니콜라-조셉 퀴뇨의 증기자동차 이후 약 100년간 증기자동차 기술은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아메데 볼레가 1878년 개발한 양산 증기자동차 ‘라 망셀’은 현대 자동차 역사의 첫 단추를 꿴 혁신적인 차량으로 평가받습니다. 라 망셀은 세계 최초의 양산 자동차로 총 50대가 생산되었으며, 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보다 8년이나 앞선 선진적인 설계를 자랑했습니다.

라 망셀의 기술적 우수성은 여러 측면에서 돋보였습니다. 2기통 증기기관에서 생성된 동력은 추진축과 차동기어로 구현된 후륜구동 체계를 통해 뒷바퀴로 전달되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정교한 기계 설계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앞바퀴에 2개의 가로 판스프링을 적용한 독립식 서스펜션을 채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승차감 향상을 위한 혁신적인 시도로, 현대 자동차의 서스펜션 시스템과 맥을 같이 하는 설계입니다. 조향장치는 앞바퀴 양쪽의 랙에 각각 연결된 레버를 이용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 역시 당시로서는 매우 정교한 기술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드 디옹-부통이 1884년 개발한 ‘라 마르퀴스’ 역시 증기자동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델입니다. 1900년부터 1905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한 드 디옹-부통의 자동차 사업은 증기자동차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보트나 자동차용의 소형 증기기관을 주로 생산하던 이 회사는 1880년대부터 실용적인 증기자동차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라 마르퀴스는 전방에 각각 2마력의 성능을 내는 소형 증기기관을 2기 탑재하고, 여기서 나온 동력을 체인을 통해 앞바퀴로 전달하는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증기 생성을 위한 물탱크는 차량 뒤쪽에 탑재되었으며, 4명의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데 앞좌석과 뒷좌석이 서로를 등지고 있는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시험용 차량으로 만들어진 라 마르퀴스는 파리에서 베르사유까지 평균속도 26km/h의 속력으로 달리며 그 실용성을 입증했습니다.

 

스탠리 증기자동차와 미국 시장의 대중화

미국에서는 1890년대부터 실용적인 증기자동차들이 속속들이 개발되며 대중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특히 프란시스 스탠리와 프리랜 스탠리 형제가 만든 증기자동차는 우수한 성능과 실용성으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스탠리 형제는 1890년대 초 메사츠세츠에서 열린 세계 자동차 경주대회를 통해 유럽에서 온 증기자동차들을 접하면서 증기자동차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이후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나섰습니다.

스탠리 형제의 증기기관은 여러 면에서 획기적이었습니다. 증기기관 내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한 구조를 통해 작은 크기에도 높은 출력을 낼 수 있었고, 액체 연료라면 뭐든지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함까지 갖췄습니다. 이는 무겁고 지저분한 석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으며, 당시 증기자동차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를 해결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소음과 진동도 현저히 적었고, 조종 방식도 단순하여 운전하기가 쉬웠습니다. 보일러 예열 시간도 빨라서 취급하기가 매우 용이했는데, 이는 기존 증기자동차의 치명적 약점이었던 출발 전 긴 준비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것이었습니다.

스탠리는 1898년 처음 생산을 시작한 이 차량을 후에 로코모빌이라는 기업에 넘겼고, 1910년대부터는 스탠리의 상징과도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증기자동차를 제작하여 판매했습니다. 당시 증기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우위에 있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초기 내연기관 자동차의 성능이 증기자동차에 못 미쳐 경쟁력이 없었고, 증기자동차 대비 신뢰도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증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나 초기 브러시드 모터를 사용하는 전기차 대비 소음이 적고 운행이 쾌적했으며, 성능 면에서도 우위에 있었습니다.

 

도블 모델 E와 증기자동차의 종말

미국의 기계공학자 애브너 도블이 세운 도블 증기자동차는 1909년부터 1931년까지 증기자동차를 생산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증기자동차를 만들어 온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급속예열 보일러와 전기식 시동장치의 도입 등, 그들의 증기자동차는 미국에서 증기자동차가 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20년대에 내놓은 모델 E는 여러 면에서 가장 발달된 증기자동차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도블 모델 E의 증기기관은 고유의 모노튜브형 보일러 설계와 당대의 철도기관차에 사용된 설계를 적용하여 우수한 동력성능을 발휘했습니다. 증기기관이 뒤쪽에 탑재되어 뒷바퀴에 직접 동력을 전달했고, 압력의 조절만으로 속도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에 변속기가 필요 없었습니다. 이는 기계적 복잡성을 줄이고 고장 가능성을 낮추는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또한 약간의 개조만 거치면 다양한 종류의 액체연료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정숙하면서도 우수한 동력성능을 제공했습니다. 총 24대가 제작되었으며, 미국의 유명 방송인이자 자동차 애호가로 유명한 제이 레노가 20번째 생산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증기자동차는 치명적인 단점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관부가 지나치게 크고 무거우며, 증기기관차와 마찬가지로 항상 차내에 석탄과 물을 준비해 놓아야 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증기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출발하기 한참 전에 보일러를 작동하여 물을 끓여야 하고, 보일러를 식히는 데에도 긴 시간을 요구했습니다. 즉, 시동을 걸고 정지시키는 과정이 상당히 번거로웠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증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편의성이 대중에 어필하기 시작하고 난 이후부터 서서히 도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차대전을 거치면서 내연기관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던 1930년대를 전후하여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증기자동차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로의 전환은 오늘날 내연기관에서 친환경 자동차로의 전환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패턴을 보입니다. 현재 전기차나 수소자동차는 충분하지 않은 충전 인프라로 인해 내연기관 차량보다 뒷전에 있지만, 충전시설 보급과 안정성 확보가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러운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기술의 발전은 항상 편의성과 실용성을 따라가며,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증명해 왔습니다.

 

증기자동차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초기 자동차 역사에서 자동차를 민간에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기술 혁신의 과정에서 과도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 역시 증기자동차가 걸었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결국 더 나은 기술과 편의성을 가진 쪽으로 시장은 움직일 것입니다.

 

 

출처
모토야 기사
https://www.motoy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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