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화재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2024년 인천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는 87대를 전소시키며 전기차 포비아를 확산시켰습니다. 충전 중도 아니었던 차량에서 갑자기 발생한 화재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전기차 안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배터리 쇼트, 전기차 화재의 핵심 메커니즘
전기차 화재의 1차적인 원인은 과충전, 과방전, 제조결함, 외부 가열, 외부 충격 등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화재가 발생하는 이유는 거의 하나로 귀결됩니다. 바로 배터리의 음극과 양극이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배터리 쇼트' 현상입니다.
전기차에서 많이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리튬이온의 통로 역할을 하는 액체 상태의 전해질이 채워져 있습니다. 완충된 배터리에서는 음극에 리튬이온이 가득 차 있으며, 배터리를 사용할 때 음극에 있는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하면서 전기가 발생합니다. 반대로 충전할 때는 양극으로 이동했던 리튬이온이 다시 음극으로 돌아와 채워지게 됩니다.
이때 정중앙에 위치한 분리막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의 물리적 접촉을 차단하여 쇼트를 방지하면서도 리튬이온을 통과시켜 전기가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상 배터리를 배터리로서 동작하게 해주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다이렉트로 착 달라붙게 되어 쇼트가 발생합니다. 원래는 음극에서 양극으로 리튬이온이 야금야금 이동하며 필요한 만큼의 전기가 발생하는데, 쇼트가 발생하는 순간 음극에 있는 모든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와르르 하고 한꺼번에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그야말로 뿜어져 나오게 되고, 이 에너지는 곧 열로 변하여 초고열이 발생합니다.
자동차 배터리는 이러한 구조의 셀이 여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에 하나에서 초고열이 발생하면 그 옆도, 그 옆의 옆도 모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많이 들어 왔던 '열 폭주 현상'입니다. 열 폭주가 일어나면 그 온도는 1000도가 넘을 수 있으며, 배터리에서 방출되는 압력과 가연성 가스로 인해 일반적인 자동차 화재와는 달리 화염이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번지게 됩니다.
분리막 손상, 배터리 제조의 딜레마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게 중요하고 손상되면 위험한 분리막을 대체 왜 이렇게 손상되기 쉽게 만들어 놨을까요? 분리막의 두께는 일반적으로 약 10~30 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이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보다도 얇은 수준입니다.
분리막을 이렇게 얇게 만든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온 이동의 효율성입니다. 분리막이 얇을수록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는 경로가 짧아지고, 그렇게 되면 이온이 이동하기 수월해지며 충전과 출력의 효율이 높아집니다. 두 번째는 배터리 에너지 밀도 증가입니다. 분리막이 얇다는 것은 결국 배터리 안에서 분리막이 차지하는 공간이 적다는 뜻입니다. 이로 인해 배터리의 무게와 부피를 줄일 수 있으며, 확보한 공간에 양극과 음극의 양을 더 늘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같은 부피에서도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어서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와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2024년 8월 1일 인천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주차돼 있던 벤츠 전기차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폭발했고, 무섭게 솟아오른 불길이 주변 차들을 하나씩 집어삼켰습니다. 새까맣게 타버린 현장의 모습은 말 그대로 '화마' 그 자체였으며, 이 화재로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렸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기차에 대한 불안을 넘어 공포를 심어주었습니다.
특히 이번 화재는 충돌이 일어나지도, 충전을 하고 있지도 않았던 4일 동안 '그냥' 세워둔 전기차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화재 이후 서울시에서는 90% 이상 충전된 전기차의 아파트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권고안을 내놓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상당합니다. 충전율을 제한했다고 해서 화재 발생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안전성과 효율성의 균형, 전기차 산업의 과제
지금 모든 전기차 제조사는 효율과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기차의 경쟁 상대는 다른 제조사의 전기차뿐만 아니라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해 전기차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 바로 주행거리와 충전시간입니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이 2가지 요소를 어떻게든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배터리의 태생적, 기술적 한계로 인해 충전시간이 어느 정도 걸린다는 점은 감수할 수 있더라도, 한 번 충전으로 충분한 거리를 주행할 수 없다면 전기차를 구입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안정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배터리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입니다.
화재가 발생한 벤츠 EQE 350 모델의 배터리는 공교롭게도 중국의 파라시스에서 제조한 배터리입니다. 파라시스 배터리는 중국 시장 내에서도 품질 결함으로 인한 화재 위험으로 인해 리콜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8월 6일 충남 금산에서 발생한 기아 EV6 화재는 한국의 SK온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었고, 8월 16일 경기 용인에서 발생한 테슬라 X 화재는 일본의 파나소닉 배터리를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특정 제조사의 배터리 문제가 아니라 배터리 기술 자체가 안정성과 효율 사이의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현재로서는 제조사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전보다는 효율성을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최근 발생한 화재들은 전기차 제조사들에게 '안정성과 효율 사이의 균형이 무너져 있다'는 경종을 울리는 신호와도 같습니다.
실제로 전기 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화재에 대한 문제가 화두에 올랐지만, 내연기관과 비교했을 때 비율적으로 매우 낮은 화재 발생율임에도 문제 제기가 되는 것은 새로운 탈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전기차의 화재는 일반화재에 비해 진압도 어렵고 위험한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규격에 맞는 배터리 충전기를 사용해야 하고, 배터리의 충격을 주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합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전기차 포비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용자 주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조사들이 안정성에 더욱 신경 써야 하며, 이미 공포로 물든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려면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기술들은 이러한 발전의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과연 전기차와 배터리 기술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제조사들이 효율성과 안전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g10Z_kUxUQ8?si=d8Sd5VG-mCxqs4NU